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이 사람도 ...

by 푸드라이터 2013. 11. 4.

이 사람도...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03일 연중 31주일 설교 말씀)


세관장 자캐오는 돈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돈이면 다냐?’라고들 말하지만, 세상에는 또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고 여길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돈이 있으면 죄인도 의인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멀쩡한 사람도 중병을 앓는 사람이 되어 감옥 대신 시설 좋은 병실에서 요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굶주림에 울부짖는 조카들이 너무나 불쌍해서 빵을 훔치다가 감옥에서 19년이라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장발장 같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 적지 않게 있습니다. 어쨌든 자캐오는 로마가 책정한 세금보다 몇 곱절을 덧붙여서 백성들에게 거두어 들여 많은 돈을 축적했습니다. 당연히 백성들로부터는 지탄을 받고 죄인으로 낙인 찍혔습니다. 


그러던 그가 예수께서 근처에 오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찍이 같은 세관으로서 예수님의 제자가 된 마태도 있고 소문에는 죄인들을 환대한다는 소리도 들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가까이 가기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니 그 보다도 사람들은 죄인이 자기들 틈 사이로 들어오는 것을  싫어하거나 배척했을 가능성이 더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자 그는 체면이고 뭐고 아랑곳없이 앞질러 가서 돌무화과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예수께서는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자캐오는 이 말씀을 듣고 얼른 내려와서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그동안에 축재했던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남을 속여 먹은 것이 있다면 네 갑 절로 갚아 주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리스도 예루살렘 입성 - 나무 위에 올라간 자캐오 / 조토 디 본 도네 작)


무엇이 자캐오로 하여금 이러한 변화를 일어나게 했을까요? 자캐오의 가슴 속에는 어떤 갈망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간절히 만나려고 했고, 또 ‘기쁜 마음’으로 예수님을 모시게 했을까요? 세속적으로 보면 자캐오는 남에게 눈총을 받을지언정 먹고 사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남들이 소외시킨다 해도 그것은 세금을 걷는 일에 대한 일종의 보복이므로 그것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상쇄시킬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든든한 돈이 있고 등 뒤에는 로마라는 권력이 있는데 아쉬울 것은 별로 없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자캐오가 예수님을 꼭 만나야 했던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적인 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먹고 마셔도 채워지지 않고, 아무리 창고에 돈을 쌓아놓아도 가슴에 채워지지 않는 영적인 허기와 갈증은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가끔 홀로 앉아 자신의 인생을 생각할 때 가슴에 큰 구멍이 나서 바람이 휭 하니 지나가는 것을 도무지 채울 길이 없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예수님만이 자신의 영생과 구원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달렸고, 나무에 올랐고, 예수님과 제자들을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집으로 모셨던 것입니다. 그리고서는 재산이고 뭐고 자신의 인생에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악착같이 모은 재산을 뚝뚝 잘라서 회개의 징표로서 내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그를 보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은 구원을 얻었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자캐오 역시 유다인 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죄인 취급하고 왕따를 시켰습니다. 구원의 가능성이 제로이고 지옥으로나 떨어질 것이라고 저주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하느님께서 선택하고 존중해 주시는 백성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참으로 큰 위로와 희망을 주시는 말씀입니다.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시는 예수님께서 영적으로 죽어가는 자캐오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유치원에서 노인정까지 왕따 문화가 만연하다고 하는 우리 사회에 예수께서 보여주시는 넓은 가슴과 따듯한 사랑은 가장 절실한 덕목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장기용 요한 신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쟁과 박해 그리고 증언  (0) 2013.11.18
부활에 대한 오해  (0) 2013.11.14
먼저 구해야 할 것  (0) 2013.10.29
지성이면 감천  (0) 2013.10.22
감사드리는 사람의 복  (0) 2013.10.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