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설교

맡겨진 달란트의 의미

by 분당교회 2014. 11. 18.

맡겨진 달란트의 의미

나뭇잎이 바람에 비 오듯이 휘날립니다. 길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한해의 수고와 소임을 다하고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낙엽은 쓰레기가 아니라 나름의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 같습니다. 도시가 아니라 시골이라면 그 낙엽들은 쓸어 모아져서 불꽃이 되고 재가 되어 다시 거름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대자연의 준엄한 법칙이며 하느님께서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섭리일 것입니다.

나무는 잎들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아낌없이 다 내어주고 빈털터리가 되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빈 나뭇가지는 마른 팔을 들어 올리고 하늘과 온전히 속살로 만납니다. 그리고 나뭇잎 있던 자리는 상실의 자리가 아니라 찬란한 봄날을 꿈꾸는 자리이며 가장 먼저 봄날의 생명을 잉태하는 자리라는 것을 기억하며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어 낼 것입니다. 역사와 삶의 봄날은, 그 날을 꿈꾸고 준비하는 사람한테 온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소임을 최선을 다해 아낌없이 후회 없이 마치고 모든 것을 소진한 사람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아마도 예수께서도 그것을 아시기에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일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배고픔과 가난 때문에 죽고 싶은 심정에 있는 사람들이 겪는 고통일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어찌 할 수 없는 시련을 누구나 경험하게 됩니다만, 그 고난의 한복판에서 함께 그 짐을 나누어 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조금 덜 아프지 않을까요? 시련을 극복할 수 있는 힘도 주변의 사람들의 사랑으로 얻어질 수 있음을 마더 테레사의 헌신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여겨지는 것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여겨질 때라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쓸모없는 사람, 덤으로 여겨지는 사람, 부담되는 사람으로 여겨질 때 자신의 존재가치를 의심하게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무가치한 사람으로 취급될 때 사람들은 영적으로 공허해지고 자신이 살아야 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가끔 노숙인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폭력과 불만과 불평을 쏟아내는 까닭도 장기적인 실업 상태에서 만들어진 영적인 피폐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사람들에게는 달란트가 맡겨졌음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귀하게 쓰임 받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달란트를 맡겼다는 것은 그것을 활용하여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또한 그 상급을 받게 되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달란트를 재물, 또는 재능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아마도 사람들이 사용할 모든 ‘자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재물과 재능을 포함한 인격적인 것, 성품 등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에게 달란트를 맡겼지만 한 사람은 그 달란트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묻어두었습니다. 한 달란트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돌려줍니다. 이때 주인은 이 사람에게 ‘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면서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 열 달란트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버립니다. 그리고는 바깥 어두운 곳에 내쫓아 버려 거기에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도록 합니다.

한 달란트를 그냥 묻어두고 있던 이 종은 주인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무런 관계가 없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주인의 것이니 그냥 묻어두었다가 그 주인이 돌아왔으니 돌려줍니다. 종의 입장에서 주인은 필요 없는 사람이고 또는 주인의 입장에서도 이 종은 필요 없는 사람입니다. 주인은 돈의 많고 적음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신의가 있는가를 본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도무지 생산적인 일에 관심이 없고 대신 주인의 됨됨이만 따졌습니다. 자기 주인은 다른 사람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모진 부자라는 결론을 자기 마음대로 내렸습니다. 신앙인들 중에 생산적인 일에는 관심이 없고 하느님에 대한 비생산적인 논쟁에만 휩싸이는 골몰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비슷합니다. 하느님의 성품과 개념과 의문만 논하느라 제 할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 누구에게나 하느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있는 자원을 받았습니다. 그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역할을 다 함으로서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삶의 목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임과 자원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면, 그리고 그 소임을 회피한다면 그 종말은 비참하게 되리라는 종말론적인 경고를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영적인 부를 쌓는 사람은 종말에 더욱 부요해지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종말에 더욱 초라해진다는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대한성공회 분당교회 11월 16 연중 33주 장기용 요한 신부 설교 말씀)





'말씀/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날이 오면  (0) 2014.12.01
종말이라는 거울 앞에서  (0) 2014.11.25
감사의 영성  (0) 2014.11.11
죄 없는 사람의 죽음  (0) 2014.11.05
첫 째 가는 계명  (0) 2014.10.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