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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설교

새로운 사람

by 분당교회 2019. 7. 7.

2019년 7월 7일

김장환 엘리야 사제 

설교 말씀

 

지난주일 설교를 끝내면서 교우 여러분에게 제안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 일상의 삶에서  FIVE MARKS를 지표삼아, 육체의 욕심을 따르고 있는지, 성령의 지도를 따르며 살고 있는지 성찰해보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저의 성찰을 나눕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기 –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예배와 소그룹 교제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누려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매일 성무일과, 수요예배, 어제는 첫토요일아침예배로 주님과 교제하는 은총을 누리고 있습니다. 심방과 면담을 통해서도 교우들과 사귐을 깊게 하는 한 주였습니다. 이런 특권을 누리는 사제로 부르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새 신자를 가르치고 세례주고 양육하기 – 이 또한 제가 사목자이기에 늘 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지난주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에는 FX 포럼과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배우는 시간를 가질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FX란 영국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새로운 표현Fresh Expression을 말합니다. 영국에는 2,000개가 넘는 FX 공동체가 탄생했다고 합니다.

 

사랑의 섬김으로 이웃의 필요에 응답하기 – 나눌 만한 것이 마땅치 않습니다만 굳이 나누자면, 빅 이슈 1권을 구입했습니다. 빅 이슈는 노숙인들의 재활을 위해서 제작되는 잡지입니다. 

 

불의한 사회를 변혁하며, 모든 폭력에 도전하고 평화와 화해를 위하여 노력하기 – 이 또한 나눌 것이 별로 없네요.ㅋ 있다면 평화와 정의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지난주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이 함께 한 일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이벤트라 할지라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으로 가는 길에 조금이라도 순 기능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지난주에는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는데, SNS로 연대의 마음을 표현하며 적절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창조질서를 보존하며, 지구생명의 회복과 유지에 헌신하기 – 며칠 전 페이스북을 통해 교회 지체 한 분이 텀블러를 집에 놓고 나와 커피를 사먹으려다가 참았다는 글을 보고 기뻤습니다. 하지만 저는 부끄럽게도, 지난 화요일 지인과 만나 대화하는데 텀블러가 없어 일회용 컵으로 커피를 사먹는 일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 잠시 침묵하며, 지난 한 주간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지도 가운데서 무엇을 따르며 얼마나 FIVE MARKS를 실천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2분 침묵.

 

오늘 서신은 말합니다. 갈라 6:7-9, “7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자기가 심은 것을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8  자기 육체에 심는 사람은 육체에게서 멸망을 거두겠지만 성령에 심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을 거둡니다. 9 낙심하지 말고 꾸준히 선을 행합시다. 꾸준히 계속하노라면 거둘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가 매일 일상 가운데 성령의 지도를 따라 살면, 즉 성령에 심는 삶을 살아가면, 나를 통해 삶의 현장에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느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에 심는 삶을 살아가면서 누리는 가장 큰 은총은 내가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 6장 15절, “할례를 받고 안 받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오늘 독서들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진 사람이 보여주는 삶의 특징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기쁨’입니다. 여러분은 기쁘신가요? 무엇으로 기뻐하시나요? 언제 기쁘신가요? 이 시간 예배드림이 기쁨이신가요?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일흔 두 제자에게 하느님 나라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주시며 파송하십니다. 전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일흔 두 제자가 기쁨에 넘쳐 말합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들까지 복종시켰습니다.” 

 

마귀에게 휘둘리던 삶을 살았던 자신들이었습니다. 그리 연약했던 자신들이 마귀를 멸하는 일을 했으니, 물론 예수님이 주신 권능으로 행한 일이었지만, 얼마나 스스로 대견하고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0절, “악령들이 복종한다고 기뻐하기 보다는 너희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여라.” 예수님은 우리가 어떠함이라는 조건이 아닌, 어떠함에도 불구하고 ‘존재로부터 오는 기쁨’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존재는 관계 속에서 규정됩니다. 하느님도 관계로 존재하십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느님이 하나되는 공동체로 존재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 존재의 속성이 사랑이 됩니다. 우리의 존재는 바로 이 분,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확인됩니다.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말은 구원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을 말합니다.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죠. 요한 1:12, “그분을 맞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하느님의 자녀는 아버지로 만족합니다. 아버지 하느님 안에 풍성함이 있습니다. 이사야 66:11, “너희가 그 품에 안겨 귀염 받으며 흡족하게 젖을 빨리라. 그 풍요한 젖을 빨며 흐뭇해하리라.” 

 

여러분이 하느님의 품에 안겨 젖을 빨며 미소 짓고 있는 아기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자녀는 고단한 인생 여정이어서 아픔도 많고 좌절도 하지만, 아버지가 주시는 위로를 받아 생명이 넘칩니다. 이사야 66:13-14, 13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14 이를 보고 너희는 마음이 흐뭇하며 뼈마디가 새로 돋은 풀잎처럼 싱싱하게 되리라."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가 진정 기뻐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라고 외칩니다. 이사야 66:10, “예루살렘아, 즐거워하여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아, 기뻐 뛰어라. 예루살렘이 망했다고 통곡하던 자들아, 이제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고 기뻐하여라.”

 

이런 존재의 기쁨을 알지 못하면, 방황하게 됩니다. 요한 1서 2: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쾌락과 눈의 쾌락을 좇는 것이나 재산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나온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쾌락, 눈의 쾌락을 좇고 있는지요? 견물생심, 보이는 것을 소유하고자하는 욕심을 따라 살아가며 허기심과 목마름에 방황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누리는 참된 기쁨을 생각하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새삼 알게 됩니다. 교회가 자비와 정의를 실천하는 일에 헌신할 때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참된 기쁨은 십자가를 사랑하는 사람만이 누리는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삶과 고백이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기쁨과 만족을 얻고자 좇는 이생의 자랑꺼리로 치면 사도 바울로는 그 누구의 스팩을 능가합니다. 

 

필립 3:4-6, “4 하기야 세속적인 면에서도 나는 내세울 만한 것이 있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세속적인 것을 가지고 자랑하려 든다면 나에게는 자랑할 만한 것이 더 많습니다. 5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필립 3:7 “그러나 나에게 유익했던 이런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습니다. 8 그뿐만 아니라 나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장해물로 생각됩니다. 나에게는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무엇보다도 존귀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잃었고 그것들을 모두 쓰레기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갈라 6:14, “그러나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밖에는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자녀로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이 고난당하시고 죽임 당하신 십자가! 

 

이 말씀을 묵상하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남과 비교하며 때로는 열등감에 때로는 교만에 시소를 탑니다. 세상의 것으로 자랑스러워하는 저를 보게 됩니다. 부끄러움 가운데 사순 4주부터 성주간까지 드리는 성체후기도문을 기억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한 십자가를 공경하여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로 하여금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하지 않게 하소서.”

 

여러분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구원하시고자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사랑하십시오. 날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가 주시는 기쁨으로 충만하여 풍성한 생명을 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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