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8일 나해 30주일
김장환 엘리야 신부
바르티매오에게 믿음을 배우다
오늘 예배 후 떡으로 애찬을 함께 하며 연령별 모임을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공동체입니다. 모여 서로 삶을 나누고 지지하고 격려하며 서로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치유도 일어나고 응답도 받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이것이 친교-코이노니아의 모습입니다. 구원의 이름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마태 18:19, 내가 다시 말한다. 너희 중의 두 사람이 이 세상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실 것이다
송경은 안나님이 돌아오셨습니다. 벌써 6개월이 지났네요. 환영합니다. 어제 결혼한 한승수 형제와 신부 서하나 세실리아 자매가 예배에 오셨습니다. 박수!
주일 예배드리고 신혼여행을 떠난다고 합니다. 귀하고 아름다운 믿음입니다. 두 분 덕분에 앞으로 우리 교회에 고소한 깨 내음이 가득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추수감사는 하느님의 섭리와 은총에 보답하는 일입니다. 하루와 한해와 일생의 삶이 모두 “눈물로 씨 뿌리고, 힘써 일하여, 기쁨으로 거두는” 추수의 과정입니다. 목적을 깨닫고 도전하며, 과정을 성실히 인내하고, 결실을 감사하며 나누는 일이 신앙의 삶입니다. 감사와 찬양의 봉헌으로 풍성한 은총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
이번 추수감사주일 헌금의 1/3은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 성직후보생들의 장학금으로 플로윙합니다. 성공회 성직후보생들은 기혼자들이 많습니다. 교회에서 등록금을 받아도 기숙사비, 밥값, 책값, 용돈 등이 없어 고생합니다. 우리 성공회의 미래를 위해서 좋은 성직자들이 많이 배출해야 하는데, 여러분의 기도와 정성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정성껏 절기헌금을 준비해오시면서 감사노트도 가져오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분들이 계시면 이번 한 주라고 착실히 적으시기 바랍니다. 헌금은 성당에 입장하시면서 봉헌함에 넣지만, 감사노트는 예배 중에 가지고 계시다가 영성체하러 나오실 때 성당 앞쪽에 준비된 함에 넣어주시면 됩니다. 이유는 다음 주일에 오시면 압니다.
이제 오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설교 제목은 “바르티매오에게 믿음을 배우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오늘 복음의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바르티매오입니다. “티매오의 아들”이라는 뜻으로 이름도 없는 존재입니다. 시각장애인으로 그저 할 수 있는 일이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목에 앉아 구걸하는 것입니다. 하루하루 남들이 던져주는 동전에 목숨을 맡기며 아무 소망도, 의욕도, 보람도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한 소문이 들려 왔습니다. 나자렛 출신의 예수라는 이름입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문둥병자도, 중풍병자도 고쳐주시고 마귀 들린 사람들은 자유케 하고, 죽은 소녀도 살려내셨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혈증으로 고통 받던 어떤 여인은 그의 옷자락을 만졌는데도 병이 낫고 온전케 되었다는 소문을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베싸이다라는 곳에서 맹인도 고쳐주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마르코 8장에 나옵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진짜 나에게도 기회가 있다. 예수를 한번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눈도 뜨고... 구걸하며 살아가는 구차한 내 인생이 바뀔 수 있을텐데...’ 이런 소망의 생각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런데 바르티매오의 귓가에는 놀라운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나자렛 예수라는 사람이 지나간다. 저 사람이 나자렛 사람 예수라네...’ 바르티매오의 소망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예수가 내 앞을 지나가고 있다니 꿈이야 생시야? 그 분은 지금 어디에 있지?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지나가는 거야? 어떻게 해야 예수님을 만날 수 있지?’
소경인 처지에 예수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소리치는 것 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얼마나 소리가 크고 시끄러운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용히 하라고 야단까지 칩니다. ‘조용히 해! 이 거지야!’ 하지만 바르티매오는 더욱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이 외침이 예수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를 불러오너라.” 사람들이 바르티매오에게 와서 말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라. 그분이 너를 부르신다.”
지금도 수많은 인생들이 버르티매오처럼 외치고 있습니다. “키리에 엘레이숀, 그리스데 엘레이숀” 이렇게 외치는 영혼들에게 주님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라.”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님 앞으로 나왔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라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셨습니다. 바르티매오는 즉시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제 눈을 뜨게 해주십시오.”
바르티매오 인생에 가장 큰 문제는 ‘보는 것’입니다. 눈을 뜨고 볼 수만 있다면 구걸하며 살아가는 구차한 인생에서 해방되어, 전혀 새로운 삶으로 보다 의미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르티매오에게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떨어지자 곧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눈을 뜬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의 인생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가라’ 하셨지만,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놀라운 인생의 변화!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물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바르티매오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합니다. 만나지 않으면 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드리는 감사성찬예배를 통해 그 은총이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십니다. 고치시는 이, 보게 하시는 이, 구원하시는 분은 분명 예수님이신데, ‘네가 가진 믿음이 너를 살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거나 기적을 행하실 때 그 사람에게 믿음이 있는지를 먼저 시험해 보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칭찬도 하시고, 축복도 하시고, 소원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앞서 마르코복음 5장에서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으로 고통 받던 여인이 치유 받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합니다. “여인아, 내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로 가까이 가는 사람은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바르티매오가 예수님을 만나는 이야기를 통해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란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하십니다. 주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이란?
첫째, 믿음은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아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바르티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고 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메시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메시아 - 그리스도 - 구원자.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이면 나를 고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나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시작입니다.
둘째, 믿음은 구원자 예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어떤 아이가 물에 빠졌습니다. 그 때 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오직 한 마디는 아빠, 엄마를 부르는 것입니다. ‘아빠! 살려줘. 엄마! 살려줘.“ 이렇게 믿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 예수님이심을 알고 그분 앞에 나가 부르짖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자기 생명까지 내어주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느님의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중보하고 계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 7:25, 이렇게 예수께서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중재자의 일을 하시니 당신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언제나 구원해 주실 수 있으십니다. - 예수님을 구원자로 알고 그에게 나오는 자를 주님은 기뻐하시고 구원의 은총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셋째, 믿음은 장애를 뛰어 넘어 예수님 앞에 나가는 용기입니다.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지만, 바르티매오는 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는 믿음은 난관이나 장애물을 뛰어넘는 용기로 나타납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친구이야기, 하혈증을 치유 받은 여인의 이야기 모두 어떤 난관이 있어도 그것을 뚫고 주님 앞에 나가는 용기가 믿음인 것을 보여줍니다.
지난 주일 김해리 페이스 자매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찬양의 후렴부 가사가 이렇습니다. “하느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디 때나 바라보시고 하느님 인자한 귀로서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찌라.”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믿지만, 조용히 하라는 꾸지람에 소리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면 바르티매오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더 소리쳤을 때 예수님이 가던 길을 멈추신 것입니다. 의심, 회의, 염려, 나태 등등을 이겨내며 인내하며 기도하십시오. 주님이 들으십니다.
넷째, 마침내 믿음은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실 때 바르티매오는 겉옷을 벗어던지고 예수님 앞에 일어나 나갔습니다. 50절, 소경은 겉옷을 벗어버리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다가왔다. 겉옷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옛 생활입니다. 겉옷은 구걸할 때 깔고 앉는 자리였고 추운 밤 의지하는 이불이었습니다.
겉옷을 벗어버렸다는 말은 예수님을 만난 이상 구차하게 옛날처럼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을 구하는 구차한 인생을 살지 않겠습니다. 목표도 없고 의미도 없는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두 주 전, 영원한 생명을 구하던 부자 청년은 예수를 따르는 삶을 포기했습니다. 지난주일, 야고보와 요한은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을 구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를 만남으로 눈을 뜨게 된 바르티매오는 그를 따르는 제자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시간,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 찬양과 예배를 받으시며 이곳에 계십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에게서 바르티매오와 같은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바르티매오처럼 오직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심을 믿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 앞에 달려나게 간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너의 믿음이 너를 살렸다’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을 따르는 새로운 인생,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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